네덜란드의 보물을 만나는 곳: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2024)

매혹적인 유럽미술관

네덜란드의 보물을 만나는 곳: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2022.03.12. 오후 12:09

by이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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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미술관 전경 Photo by John Lewis Marshall (출처: 미술관 홈페이지 https://www.rijksmuseum.nl/en/presskit)

17세기 네덜란드는 세계 무역과 상업, 예술의 중심지로 황금기를 누렸다. 렘브란트 판 레인, 페르메이르, 프란스 할스 등 서양미술사를 빛낸 위대한 화가들이 이 황금시대에 활동하면서 찬란한 예술의 꽃을 피웠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이들이 남긴 걸작들의 집결지다. ‘레이크스Rijks(국립이란 뜻의 네덜란드어)’로도 불리는 미술관은 암스테르담 남부의 ‘뮤지엄 광장(Museumplein)’ 안에 위치해 했다. 녹음이 우거진 뮤지엄 광장에는 국립미술관뿐 아니라 반고흐 미술관, 스테델릭 미술관, 모코 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들이 밀집해 있어 1년 내내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뮤지엄 광장에 있는 반고흐 뮤지엄(왼)과 스테델릭 미술관(오)

뮤지엄 광장 안 분수

10년의 기다림 이후

네덜란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국립미술관이 현재의 장소에 들어선 건 1885년이지만 그 역사는 17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덜란드 정치인이자 재정부 장관이었던 이삭 고겔은 루브르 박물관 같은 국립미술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정부는 1798년 국립미술관 설립을 결정하고 1800년 헤이그 왕궁 내에 개관했다. 8년 후 암스테르담 왕궁 내로 이전했던 국립미술관은 1885년에야 비로소 단독 건물을 지어 독립했다.

네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미술관 외관(위)과 내부(아래) Photo by John Lewis Marshall (출처: 미술관 홈페이지 https://www.rijksmuseum.nl/en/presskit)

붉은 벽돌로 된 미술관 건물은 미음자 구조의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설계했던 건축가 피에르 쿠이페르스가 설계한 것으로 한눈에 봐도 품격과 웅장함이 느껴진다. 개관 이후 몇 번의 증축 공사가 있었지만 지금의 모습은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대대적인 개조 공사의 결과물이다.

개관 후 125년간 네덜란드 최고의 국립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던 미술관은 2003년 완전 폐쇄한 후 우리 돈 5500억 원을 투입해 대규모 공사를 단행했다. 개조 공사는 기존 건축 양식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현대적인 전시 공간과 최신 설비를 추가하는데 역점을 두고 신중하게 진행됐다.

디귿자 구조의 국립미술관. 정원에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이 설치돼 있다.

장장 10년의 기다림 끝에 지난 2013년 4월 다시 문을 연 국립미술관은 경쾌하면서도 개방된 21세기형 뮤지엄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과감한 투자와 기다림의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첨단의 시설을 갖춘 데다 이전보다 훨씬 넓고 쾌적해진 미술관은 연간 방문객 수도 극적으로 늘었다. 해마다 80만 명에서 100만 명 남짓 찾던 방문객 수가 2013년 220만 명을 넘었고, 2014년에는 240만 명을 넘는 등 이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21세기 미술관에서 만나는 17세기 황금시대 미술

뮤지엄 광장을 통해 새 미술관 입구로 들어서면 밝고 환한 아트리움이 관객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예전에 있던 미술관 중정이 이렇게 거대한 로비 공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지상 3층까지 확 트여있어 시야가 시원하다.

열린 광장 같은 국립미술관 아트리움

아트리움 한쪽 지하에는 아트숍이, 바로 그 위층에는 천장과 출입문이 따로 없는 개방형 카페가 새로 들어섰다. 또 아시아관과 드로잉 학교, 강당, 식당, 도서관 등 교육공간과 관람객 편의 시설들이 대폭 늘어났다. 소음이 차단된 조용한 교회 같은 미술관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시끌벅적한 열린 광장을 닮았다.

아트숍 바로 위에 개방형 카페가 위치해 있다.

미술관 내부의 변화도 눈에 띈다. 기존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고딕 천장과 기둥은 그대로 살리되 벽이나 바닥, 가구 등은 차분한 무채색 톤으로 마감해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인상을 준다.

네오고딕 양식의 기존 건축을 살려 개조한 현재 모습 (출처: 미술관 홈페이지 https://www.rijksmuseum.nl/en/presskit)

지상층부터 3층까지 이어진 80개의 전시실에는 13세기부터 21세기까지를 아우르는 백 만점의 소장품 중 8000점이 상설 전시돼 있다. 그중 2층에 있는 30여 개의 전시실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작품들을 위한 공간으로 관람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렘브란트의 <야간 순찰>,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 프란스 할스의 <기분 좋은 술꾼> 빈센트 반고흐의 <자화상>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작들을 만날 수 있다.

페르메이르 <우유를 따르는 여인> 1660년/ 반 고흐 <자화상> 1887년/ 프란스 할스 <기분 좋은 술꾼> 1628~30년

페이메이르의 작품을 감상 중인 관람객

갖은 시련을 견뎌낸 네덜란드의 보물

국립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은 단연 <야간 순찰>이다. 루브르의 <모나리자>처럼 이 그림 하나를 보기 위해 해마다 200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 지금은 렘브란트의 최고 걸작이자 ‘네덜란드의 보물’로 칭송받는 명화지만, 당대에는 전혀 인정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온갖 시련과 수모를 겪었다.

렘브란트 판 레인 <야간 순찰> 1642년

그림은 암스테르담 시민 민병대 중 하나인 클로베니에르 부대가 주문한 집단초상화로 대장의 지휘 하에 부대원들이 출격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화면 가운데 검은 옷을 입은 키 큰 남자가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이고, 밝은 황금빛 제복을 입은 남자가 라위턴뷔르흐 부대장이다.

원래 제목은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 지휘 하의 밀리티아 제2지구 민병대>였다. <야경> 또는 <야간 순찰>이란 제목은 18세기에 붙여진 것으로 그림 위에 칠한 검게 변한 니스 때문에 밤 장면을 그린 것으로 오인한데서 기인했다. 1940년 약 300년 동안 그림을 덮고 있던 오랜 먼지와 광택제를 벗겨내자 밤이 아니라 한낮의 햇빛 아래서 진군하는 부대의 모습이 비로소 드러났다. 흥미로운 점은 낮 장면을 그린 것으로 판명된 이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야간 순찰’로 부른다는 거다.

화가는 무미건조한 포즈를 취한 집단 초상화 대신 연극의 한 장면처럼 독창적인 방법으로 그림을 완성했다. 하지만 낯선 스타일의 그림은 주문자에게 큰 분노를 안겼고, 관객들에겐 비웃음과 조롱만 샀다. 이 그림 이후 렘브란트의 명성은 바닥으로 추락했고, 초상화 주문이 끊기면서 생활고도 겪게 된다.

렘브란트가 말년에 그린 자화상 <사도 바울의 모습을 한 자화상> 1661년

<야간 순찰>은 인정만 못 받은 게 아니라 물리적 훼손도 당했다. 1715년 그림을 암스테르담 시청사의 작은 벽에 끼워 맞추기 위해 그림 일부를 잘라 내는 수모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맨 왼쪽에 있던 병사 두 명의 초상도 사라졌다. 1885년 현재의 국립미술관 전시실로 옮겨온 이후에도 몇 차례 반달리즘으로 훼손되었다가 어렵게 복원됐다.

<야간 순찰>의 17세기 모작. 1715년 잘려나간 부분이 하얀 선으로 표시돼 있다.

탄생부터 온갖 시련과 모욕을 견뎌낸 <야간 순찰>은 2019년 여름부터 대규모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변색이 심하고 일부는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1975년 있었던 마지막 복원 이후 44년 만에 이루어지는 대수술이다. 수년이 걸리고 수백만 유로가 소요될 이번 복원 작업은 투명한 특수 유리 전시실 안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복원 작업을 위해 그림 주변에 유리관이 설치됐다.

<야간 순찰>의 공개 복원 과정을 설명하는 관장(왼) 복원 작업을 위해 그림을 분석 중인 전문가들(오)(출처: 미술관 홈페이지 https://www.rijksmuseum.nl/en/presskit)

미술관 관람객뿐 아니라 온라인으로 전 세계가 볼 수 있도록 복원과정을 공개했는데, 그 이유를 타고 디비츠 관장은 이렇게 밝혔다. “놀랄 만큼 정말 중요한 그림이고 많은 사람들이 계속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복원 중에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그림은 우리 모두의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관장의 말대로 렘브란트의 그림은 네덜란드인뿐 아니라 세계인이 보고 싶어 찾아오는 모두의 명화다. 이번 복원 작업으로 지난 370여 년 간 몰랐던 <야간 순찰>의 새로운 비밀이 또 밝혀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글.사진 이은화

대한민국 1호 뮤지엄스토리텔러. 세계 도처의 미술관들을 누비며 직접 취재한 미술 이야기를 신문과 방송, 강연을 통해 전하는 이야기꾼이다.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 『자연미술관을 걷다』 『숲으로 간 미술관』 『그랜드 아트투어』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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